단편소설
술래야,술래야!
白雲 김주선
“저런 등신, 저 아프면 친구들이 돈 들고 와서 수발 들어주나! 마누라가 하지;”
조개구이 집 마당을 막 들어서는데 애진이 불같이 화를 내며 미닫이문을 열고 나왔다.
“왜 그래? 뭔 일인데?”
“글쎄, 상진씨가 철이 덜 들었어,”
잔뜩 못 마땅한 얼굴로 뒤따라 나온 선영이 놀라는 미선의 물음에 투덜거린다.
“글쎄 저 등신이 마누라 보다 친구가 더 좋다 잖아, 더구나 남들은 다 마누라가 먼저라는데 저만 친구가 더 좋데 이런 제길,”
폭풍우에 나뭇가지 흔들리듯 성난 애진의 목소리는 조용한 강화의 밤을 깨웠다.
“저런, 화나게 생겼구만.. 너무했네,”
“내가 다섯 번을 물어봤어? 그런데 다 아니래! 끝내 친구가 먼저래, 저런 등신 내가 헛 살았어 삼십년씩이나 이제 와서 이런 소릴 듣게 될 줄이야,”
씩씩대던 애진은 숄로 어깨를 감아서 거칠게 움켜쥐고는 조금 전에 지나온 호숫가로 타박타박 걸어갔다.
“따라가 봐야지, 이 시간에 혼자서 ..”
걱정스런 얼굴로 선영이 총총 뒤따라갔다. 애진과 선영이 들어간 어둠속에 나폴나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람 좀 참지 남자들 술 마시면 무슨 말을 못해,,에그..’
미연이 혀를 차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수련은 빙긋이 웃었다.
‘그걸 같구, 뭘, 이혼을 할망정 친구는 못 버린다는 남자도 있는 걸,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게 남자인걸,’
누구의 노래처럼 세상은 참 요지경속이라고 수련은 생각했다. 찰칵찰칵, 찰라에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그렇게도 행복했던 그들이 아닌가.
“이거는 내 것이니까, 누구도 손대지마,”
애진이 불판위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장어 꼬리를 요리죠리 뒤집어 가며 정성껏 익혔다. 모두가 제 몫은 챙겨 먹고 추가로 나온 장어꼬리다.
애진이 성심을 다해 구운 장어 꼬리를 매콤한 와사비 간장에 찍었다. 상추에 새콤한 무 쌈도 한 장 깔았다. 장어꼬리에 마늘과 생강을 넣고 잘 싸서 현우 입에 넣어 줄 양, 건너 건너서 길게 손을 뻗었다.
“자기야, 이거 먹어 아주 맛있게 잘 익었어,”
저만큼에서 현우가 받아먹겠다고 입을 벌리고 다가오는데, 먹음직한 쌈이 눈앞에 어른대자 상진이 날름 받아먹어 버렸다. 쩝, 소주를 한잔 털어 넣고 안주로 먹겠다던 현우는 쓴맛에 일그러진 인상으로 입맛만 다셨다. 애지중지 구운 장어 꼬리를 엉뚱한 사람의 입에 넣어버린 애진은 억울하다고 팔딱댔다.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어버린 그때, 한잔 술에 기분이 업 된 애진은 주방을 향에 벨을 눌렀다.
“여기, 장어 하나 추가해 주세요, 꼬리는 잊지 말고 꼭 챙겨 주셔야 해요”
또 하나의 장어 꼬리가 나오자 애진은 다시 잘 굽기 시작했다.
“얘! 가만히 좀 있어, 왜 그렇게 방정맞게 흔들고 그래, 이왕이면 좀 더 멋있게 흔들어 주든가..큭큭큭,”
애진은 즐거워 죽겠다고 익살스럽게 킥킥대며 혼잣말을 하며 석쇠위에서 파르르 떠는 장어꼬리를 젓가락으로 지그시 눌렀다.
“이건 절대 건드리지 마, 이건 우리 남편이 먹어야해,”
애진이 석쇠 위를 두 손으로 가리며 아무도 손을 못 대게 할 량 호들갑을 떨었다.
“알았어, 알았어, 맛있게 굽기나 해,”
애진의 앞자리에 앉았던 호진이 음흉한 웃음을 띤 체 능청스럽게 대답을 했다. 술을 따라주는 선영과 애진이 잠시 무슨 말인가 주고받으며 깔깔거렸다. 눈물이 나도록 웃어대던 애진이 눈가에 주름질까 손끝으로 다독이며 석쇠를 보니 잘 익어가던 장어 꼬리가 어느새 없어져 버렸다.
“아니, 어디 갔어. 내 꼬리~”
그제야 눈치 챈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만들고 호들갑을 떨지만, 장어 꼬리는 이미 다른 사람의 입속에 있었다. 맞은 편 그 남자, 호진이 책상다리를 한 채 두 손을 무릎에 묻고는 몸채를 흔들거린다. 입에는 한입 볼록하게 물고서 싱글거린다.
“뭐야, 내 꼬리, 호진씨가 먹은 거야?”
대답도 없이 우물대며 눈만 껌벅이는 그 남자, 호진.
애진이 다시 주방을 향해 악다구니를 썼다.
“여기 장어 일인분 추가요,”
세 번째 장어는 무사하게 잘 구워졌다. 애진은 다시 정성들여 쌈을 쌌다.
“이것은 안 돼, 누구도 꿈꾸지 마,”
애진은 저만치 앉은 현우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옆자리에 앉았던 상진의 손이 불숙 장어꼬리를 노렸다.
“안 돼!!!!!!!”
애진은 뺏기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장어꼬리 든 손을 치켜들고 벌러덩 누워 건너 앉은 현우에 입에 넣는데 성공했다.
건너편 모텔의 불빛이 물결에 출렁이는 밤의 호수는 아름다웠다. 열두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모텔마다 이미 차버린 객실, 그나마 후미진 곳에 숙소가 정해졌다. 잠자리에 들기는 아까운 시간, 그들은 2차를 가기위해 호숫가를 끼고 돌았다. 호수 가득히 앉았던 철새들도 어디론가 모두 날아가 버린 강화의 밤, 엄동설한의 추위가 몸을 움츠려들게 했지만 한잔 술에 훈훈해진 마음에 타박대는 발길은 춥지 만은 않았다.
마음껏 술을 마실 수 없었던 수련은 그들 곁에 설 수 없었다. 모두가 취하여 흔들리는 밤, 말끔한 정신은 조금은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바라 볼 수 있었다. 간간히 날리는 눈발, 얼굴에 닿은 차가움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뭔가 모를 행복감도 있는 듯, 낯선 느낌에 젖어드는데. 한 사람이 다가왔다. 아내의 필사적인 사수로 장어 꼬리를 먹은 그 남자, 현우다.
“이 밤이 즐겁습니까?”
“네, 즐겁습니다. 분위기도 좋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니 더욱 좋아요.”
“그렇죠? 가끔은 이런 기분도 내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늘 보는 사람과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도 이렇게 좋은데 ...”
“그렇죠, 그러니 애인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더욱 좋겠지요, 나도 몇 번 바람피우다. 걸려보긴 했지만 그 기분 참 좋더라구요,”
현우는 술에 만취되어 있었다. 에고, 이 사람이 취했나보다. 하기야, 이 남자 바람 핀 것 아는 이는 다 아는 이야기인데..수련은 슬그머니 다가서며 팔짱을 끼려드는 그 남자에게서 조금 물러서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람들이 벌써 저만큼에 우리도 어서 따라가요 현우씨,”
저만치 앞서가는 이들을 보니 가관이다. 발길을 서둘러 앞서간 이들을 향했다. 어느새 꺼내 왔는지 무릎 담요를 뒤집어 쓴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저 쨌든 즐거우면 그만인 밤이었다. 호진은 취 할 만큼 취해서 마누라는 어디에 오는지 관심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저 친구들과 웃고 떠들기 바쁘다. 2차로 조개구이 집을 들어갔지만 조개가 영 싱싱하지를 않았다. 정성껏 차린다고 내어오지만 껍질만 크고 여일대로 여윈 조갯속은 주인의 수고로움에 비해 너무나 초라했다. 이미 시간은 열두시를 향해 가고 수련은 맑은 정신에 앉아 있기가 힘겨워서 바람이나 쐴 양으로 일어섰다. 옆에 있던 미연이 외투를 챙겨들고 뒤따라 나온다. 참, 평안한 밤이었다. 자근자근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이야기하는 그녀와 꽤나 먼 길을 산책하다보니 슬그머니 적막의 공포가 밀려온다.
애진이 많이 취해버렸다. 선영도 오른 술기운에 옆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그저 신
난 건 남자들이다.
“우리가 만난 게 그럭저럭 이십년이 되어가네,”
총무인 상진이 혀가 꼬인 소리를 한다.
“그래, 그동안 참 잘 지네 왔어, 이탈하는 사람도 없고. 앞으로도 쭈욱 이렇게 하자, 누가
먼저 갈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세상 떠나는 날까지.”
“야야, 당근이지 난 밥은 안 먹어도 살지만 친구들은 안 만나고는 못살지,”
현우의 말에 상진이 되물었다.
“정말?”
“정말이지 그럼, 나는 여기 이친구들이 정말 좋아, 한 달에 한번 이모임만 기다린다니까 하하,”
“뭐? 그럼 자기는 친구들이 더 좋아 아니면 마누라가 더 좋아?”
술에 취해 담방대던 애진이 그 소리에 정색을 하며 물었다.
“이 사람아 당근 친구가 더 좋지,”
“뭐라고?”
현우의 대답에 애진이 펄떡 뛴다.
“정말? 정말 마누라보다 친구가 더 좋아?”
“응,”
현우의 대답에 약이 오른 애진이 남자들을 향해 묻는다.
“말 해봐요, 다른 사람들도 마누라보다 친구가 더 좋아요?”
“그래도 마누라가 먼저지 어떻게 친구가 먼저니?”
상진이 대답이었다.
“현우씨 말해봐, 지금도 친구가 먼저야?”
애진이 현우를 닥달했다.
“응, 난 친구가 더 좋아,”
“이런 젠장, 그래 넌 친구들이나 만나면서 살아라,”
애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선영이 뒤따라 일어났다.
그들이 숙소에 도착하니 불같이 화를 내던 애진은 이미 숙소에 와 있었고 뒤따라간 선영은 오지 않고 있었다. 선영은 어찌 된 걸까! 걱정되는 맘은 한편으로 접어두고 수련은 피곤한 몸을 뉘이고 보니 밖에서 보기보단 숙소가 깨끗하게 잘 꾸며져 있다. 술이 오를 대로 오른 호진은 샤워를 하고 눕더니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시계를 보니 두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잠이 올 것 같지를 않아 컴퓨터를 켜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미연이다.
“자는 거야? 난 잠이 안 와, 안자면 우리 산책할까?”
수련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미연은 이미 나와 있었다. 인적이 없는 호숫가는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건너편 모텔의 네온이 물결에 비쳐 너무나 아름다웠다. 조근조근 이야기를 하는 미연에게선 향긋한 치약냄새와 술 냄새가 섞여났다.
“선영이는 왔데?”
“몰라, 애진은 왔다는데 ..선영은 안 왔을 것 같아, 아까 상진씨가 전화 하는데 대리 불러서 간다고 하든걸.”
“상진씨도 너무했지 차에 가 있을 거라고 가보라니까 안가드라고..”
“너무 멀리가지는 말자 왠지 으시시하다.”
미연이 웅크린 어깨를 감싸며 적막이 감도는 어둠의 마을을 돌아보았다.
“응, 그런데 저기 사람 있는 것 같아, 우리 차 주차해 놓은데..”
“그래, 가볼까? 선영이인지도 모르 잖어,”
조심스레 다가가보니 선영의 차로 왠 남자가 다가가고 있었다.
“누굴까?”
“남자잖아, 상진씨, 아닌데?”
갑자기 공포감이 생긴 미연과 수련은 다가가지도 못하고 그 남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좀 도둑인가 봐, 신고할까?”
“그러게 조금만 더 지켜보자, 어휴 춥다.”
미연이 어깨를 움추리며 진저리를 쳤다.
선영의 차로 다가간 남자가 문을 열려고 하자 미연이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냈다.
“신고하자, 맞아 도둑이야.”
“기다려봐, 뭔가 이상해!”
수련이 미연을 툭 쳤다. 남자의 손은 차에 닿지를 않았는데 저절로 자동차문이 열린 것이다. 문이 열리자 불빛이 새어 나왔고 얼굴을 내민 건 선영이었다.
“뭔 일이야 이게,”
미연이 놀라서 수련을 쳐다봤다.
“나두 모르지. 아! 대리 불렀나보다. 아까 대리 어쩌구 하던데.”
“아하, 그런가보다,”
안도에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야! 저기 좀 봐!”
미연이 호들갑스럽게 팔꿈치로 툭툭 쳤다.
차에서 내린 선영은 휘청, 그 남자의 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어머나, 어머나.. 저게 무슨 일이래,”
“뭐야?, 저 그림은..”
“아휴~ 저 내숭,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사람 잘못 봤구먼 ...쯪쯔”
“어쩐지 전에 없이 핸드폰을 들고 살더라니, 왜 문자도 참 많이 주고받고 하잖아,”
“그랬던 것 같아,”
미연이 가증스럽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다.
선영의 손에서 키를 받은 남자가 자동차 잠금을 하고 선영을 부축했다. 선영은 아까 보다 더 취기가 올라 보였다.
“따라 가볼까?”
두 사람이 선영의 차 곁을 떠나자 미연이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야! 그만두자 모르는 게 났지, 알고 선영이를 어떻게 보겠니? 지 인생 지가 사는 건데 그냥 여기서 덮자 우리 둘이...”
“그도 그렇지? 아 춥다. 그만 들어가자.”
“난 우리 모임 여자들은 참 알뜰하고 조신한 게 남자들이 아내하나는 잘 만났다고 생각해 왔거든..”
“그런데 어느 날인가 부터 생각이 달라지더라구, 사실 몰라서 그렇지 그들에 삶을 어찌 알겠어,”
“그건 그래, 저렇게 깜찍한 얼굴로 속이는 데야, 그래도 정말 몰랐다. 선영이 재가 저럴 줄은 꿈에도 몰랐지.”
“맞다, 에휴~ 다 지 능력이지모, 말해봐 수련이 너두 누구 있지 그렇지? 요 깜찍한 것아 다 털어놔라..”
얌전한 미연이 수련의 옆구리를 찔러가며 장난을 쳤다.
“그러게 지금부터 생각해 볼까 싶네, 호호호”
“엄머, 점점 ..ㅋㅋㅋ ..들어가자 춥다.”
미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재미있는 사건을 놓쳐 조금 아쉽다는 표정으로 한 쪽 눈을 찡긋하
며 어깨를 달싹해 보였다. 막 발길을 돌리려는데 갑자기 선영의 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갑자기 남자가 너털웃음을 웃어 제킨 것이다.
웃음소리는 새벽공기를 가르며 또렷이 두 사람의 귀에 전달됐다. 동시에 두 눈이 서로 마주쳤고 무엇에 홀린 듯 멍해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아무래도 따라가 보아야 할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해,”
미연의 말에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발길은 그들을 뒤따르고 있었다. 한 참후 미연이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저 남자 아무래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같지 않니?”
“내 생각도 그래, 설마 그렇까, 아닐 거야 그렇치?”
“그래도 사람 속은 모르는 거야, 확인해야해 이대로는 궁금하고 찜찜하고 ..”
미연이 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평소엔 그토록 침착하고 조용하던 미연이 몹시 흥분해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숙소와 불과 200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선영은 숙소를 모르고 있다. 그들이 모텔 데스크에 서자 환한 불빛이 그들을 비췄다.
“헉,”
미연이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왜, 그래 맞어?”
“이쪽으로 와봐 틀림없지?
“헐, 어찌 이런 일이...”
의상을 갈아입었고 옆모습이라 확실하게 단언 할 순 없었다. 그러나 틀림없는 그 라고 생각했다. 안내데스크에서 계산을 하고 있는 그는 현우였다. 애진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장어 꼬리를 하나 더 먹은 그 남자 현우,
“돌아서라! 돌아서..”
미연이 숨죽이며 중얼거렸다. 현우가 돌아서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그래야 확실하게 현우의 존재를 확인 할테니 .. 주인으로부터 열쇠와 생필품을 받은 현우가 갑자기 훌쩍 뒤를 돌아본다.다행이 창밖은 어두워서 현우는 두 사람을 보지 못했다. 미연은 놓칠세라 핸드폰 카메라를 눌렀다. 커피까지 뽑아들은 선영과 현우는 다정한 연인이 되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버렸다.
“우리 방금 본 게 뭐지?”
미연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두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게 담겼다.
“상진씨가 전화 했을 땐 선영이 분명 대리 불러서 가는 중 이라고 했는데, 그리고 그전에
선영의 핸드폰을 한참이나 통화 중이었어,”
“그럼 그게 현우씨와 통화중?”
“어머나 세상에 그랬나봐, 상진씨가 애들한테 전화 했었거든, 엄마전화 왔었느냐고,”
“안 왔다고 했구나,”
미연이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야 진짜 세상 살기 싫어진다. 재처럼 똑 부러지고 야무지게 살림도 잘하던 애가 왠 바람
그것도 남편친구랑?”
“그래서 남 싸우는데 지가 발끈하고 나간거야? 그렇잖아 싸움은 애진이가 했는데 왜 선영이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느냐구?”
“야, 선영이 머리 좋다. 그나저나 너무 늦었다. 곧 새벽닭 울겠다. 호호호 들어가자,”
숙소로 돌아온 수련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조금 전 있었던 일들이 마치 꿈만 같다.
현우씨는 돌아 왔을까! 애진은 그것도 모르고 술에 취해 정신없이 자고 있겠지, 도대체 언제 부터 둘 사이가 그렇게 된 걸까! 그러니 누굴 믿고 살아, 장어 꼬리 하나라도 더 먹이겠다고 애를 쓰던 애진의 모습이 떠올라 그 깜찍한 선영과 현우가 엄청 어이가 없고 미웠다. 밤새 잠을 설치고 아침이 다 되서야 간신이 눈 좀 붙였는데 호진이 깨운다. 호진은 이미 샤워를 마치고 어젠 너무 취해 미안하다며 슬며시 안아온다. 막 샤워를 끝내고 나오는데 총무로부터 기상호출이 온다. 잠을 못 잔 탓에 몸은 좀 찌프등 했지만 고운 아침햇살에 바람이 상쾌했다. 체크아웃 하고 나오는데 중년남여 두 사람이 데스크 앞에 있었다. 그들도 나오는 길이거니 생각했다. 수련의 나이 쯤 된 여인은 한쪽에서 커피를 뽑고 있었다.
“벌써 들어가?”
호진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뭔 말에요?”
“아니, 지금 아홉시도 안됐는데 벌써 자려고 들어간다고,”
“정말,? ”
그러고 보니 그들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숫가에는 이미 부지런한 철
새들이 날아 내리고, 상진이 혼자 나와 서있다.
“왜, 와이프는 어제 안돌아 온 거야?”
“응,”
“차에는 가봤어?”
“대리해서 간다고 했으니까 갔겠지, 미친년 이지 모. 아니! 남 싸우는데 지가 왜 발끈하고 나가서 안 안돌아 와,”
“그러게, 그건 좀 그렇다 뭐 너랑은 별일 없었잖아?”
“에휴~이혼해야지, 너무 제멋대로야, 내가 안살아 절대 루... 그동안 편하게 살았지”
상진이 투덜대고 있는데 미연이 부부가 모텔을 빠져 나온다. 손엔 모닝커피까지 들고 그들
은 모텔을 되돌아보며 뭔가 이야길 나누며 오고 있었다.
“어유, 좋았나본데..뒤돌아보는 것이..”
호진이 서먹한 시간에 윤활유를 부었다. ‘
“어떻게 됐어? 선영이랑 현우씨?”
미연이 몹시 궁금한 듯 물었다.
“모르겠어, 상진씨는 혼자 인 것 같고 현우씨는 아직 안 나왔어,”
“겉보기엔 후진데 들어가니 아늑하니 깔끔하게 꾸며 졌데 괜찮았어, 방도 따뜻하고 호호호”
여행 때마다 잠자리 타박이던 미연이 어젯밤엔 만족했는지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왔다.
“야! 저기 불륜 남여 한 쌍 나온다.”
농담을 하며 큭큭대던 호진이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이 왜 그래, 둘이 다정하게 손이라도 잡고 나오지이, ”
현우와 애진이 아직 풀리지 않은 듯 서먹한 상태로 서로 먼 산을 보며 떨어져서 나오고 있다. 아침햇살이 빛나는 호수를 돌아 차를 주차시켜 놓은 장어집 앞으로 도착했다. 상진이 차 문을 열려하자 저절로 벌컥 열렸다. 선영이 안에 있었다. 애진이 다가가서 물었다.
“아니, 대리해서 갔다드니 여기서 잔거야?”
“응, 대리해서 갈려고 했는데 무서워서 못 가겠더라구, 시내도 아니구, 여기 차에서 잤어,”
“들어오지? 모텔로..”
“어딘지 알아야가지,”
화장기 없는 부시시 한 얼굴로 애진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는 선영을 보며 미연이 어이 없는듯 할 말을 잃고 바라보다가 끝내 한 마디 한다.
“어떻게.. 세상에, 저 깜찍한 얼굴 좀 봐라, 하늘이 무섭지 않을까! 저는 모텔서 잤겠지 그러
고 새벽에 이리 와서 기다렸겠지, 현우씨는 ..“
말하던 미연이 현우를 찾아보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호수 위를 바라보며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상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 어쩜, 저 건들거리는 태도 좀 봐라, 완전 바람둥이요 이렇게 써 있다.”
“그만두자, 저 남자 바람 핀 것 하루 이틀 얘기도 아닌데. 그나저나 애진이 안 됐지 머..”
미연은 충격 이었나보다. 이십년을 만나온 사이 언제 부터 그런 비밀이 생겼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바로 옆 차선에 상진의 차가 신호에 걸려 섰다. 그 얼굴이 상당히 굳어있다.
호진이 유리를 열자 상진이 유리문을 열었다.
“가면서 화해해 그러지 말고,”
“안 해, 절대로..”
상진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수련은 몇날 며칠을 고민했다. 알려주자니 두 집안 파탄 나겠고 모른 체하자니 말이 안 되는 일이라 정말 고민이 되었다. 선영이네가 이혼은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이 된다. 이혼이 그렇게 쉽게 되겠는가. 애진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다가 그날 그렇게 된 것이지 여간 사이좋은 부부가 아니었던가. 그때 미연이 두 사람이 모텔 안내데스크에 서 있는 모습을 촬영하던 게 생각났다.
“미연아, 너 지난번 찍은 사진 좀 보네 봐라, 내 폰으로”
미연이 바로 보네 온 사진은 잘 나왔다, 한눈에 두 사람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이분 후 선영과 현우는 같은 시간에 자신들의 사진을 폰으로 받고는 적잖이 놀랐다.
“이젠 그 장난을 멈추세요, 당신들을 지켜보겠습니다.”
화들짝 놀란 선영이 현우에게 전화를 했다.
“혹시, 문자 받았어요?”
“받았지요, 누굴까? 어떻게 ..”
“큰일이에요, 어쩌죠?”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문제를 일으킬 사람이면 이렇게 문자를 보네지 않지요”
선영을 안심시킨 현우는 그날 밤 일을 떠올렸다. 쌩하니 잠들어 버린 애진을 두고 바람이나 쐬려 밖으로 나온 길에 주차해놓은 차나 한 바퀴 돌아보고자 음식점으로 간 현우, 그의 눈에 상진의 차안에서 프름한 불빛이 보였다. 차안을 살펴보려고 다가서는 현우를 보자 선영이 문을 열고 나왔다.
술이 취한 선영이 나오다 발이 걸려 앞으로 쓸어 지고 현우가 넘어지지 않게 받쳐 준 것이다. 취한 선영을 모텔로 인도 하려 했지만, 선영이 한사코 거절했다.
동반 모임이라 어쩔 수 없이 오긴 했지만 상진과 냉전중이라 숙소에 함께 들 맘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옆 모텔에 방을 잡아 준 것이데 도대체 누가 그 밤에 그 사진을 찍었다는 것일까!
시간은 무심히도 흘러갔다. 그들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얼굴로 한 달 후 모임에 참석했다. 애진도 여전히 행복한 듯 보였고 선영은 예전보다 더 날씬하고 예뻐진 것 같았다. 그들을 바라보는 수련의 귓가에는 어린시절 술래였던 그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인 그 아이는 지금도 나무에 머리를 맞대고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못 찾겠다. 꾀꼬리, 못 찾겠다~ 꾀꼬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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